마음을 아는 것과 마음을 헤아리는 것
· 이승혜 센터장
“내가 저 사람을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아요.”
오랜 시간 함께한 부부에게서 종종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함께 살아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배우자를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말을 싫어하는지, 화가 나면 어떻게 행동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할수록 상대방의 마음을 묻지 않게 될 때가 있습니다.
■ "당신 마음을 알아"라는 확신
배우자가 늦게 귀가하면
“가족보다 일이 더 중요한 거지.”대답하지 않고 침묵하면
“또 이야기하기 싫어서 피하는 거야.”서운함을 이야기하면
“결국 나를 탓하려는 거잖아.”
우리는 상대방의 행동을 보는 순간 그 이유와 마음까지 빠르게 해석합니다. 그리고 그 해석이 사실이라고 믿기 시작합니다.
특히 갈등이 반복된 부부일수록 이러한 해석은 더욱 빨라집니다.
‘또 시작이네.’
‘역시 이 사람은 변하지 않아.’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어.’
이때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미리 판단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 마음을 아는 것과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다릅니다
마음을 안다는 것은 때로 확신에 가깝습니다.
“당신은 분명 이렇게 생각할 거야.”
반면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궁금해하는 태도에서 시작합니다.
“혹시 이런 마음이었을까?”
둘 사이의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관계에서는 매우 큰 차이를 만듭니다. 마음을 안다고 생각하면 확인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하지만 마음을 헤아리려고 하면 질문하게 됩니다.
“그때 어떤 마음이었어?”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많이 속상했어?”
“당신이 말하지 않았던 마음이 있었을까?”
마음 헤아리기는 상대의 마음을 정확하게 맞히는 능력이 아닙니다. 내가 상대의 마음을 완전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 갈등할수록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워집니다
평소에는 배우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던 사람도 갈등이 시작되면 달라집니다. 서운하고 화가 나면 상대방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기 쉽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에 상대의 입장을 생각할 여유가 줄어듭니다. 그래서 부부갈등에서는 같은 행동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침묵은 ‘싸움을 더 키우지 않으려는 노력’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나를 무시하는 행동’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반복되는 질문은 ‘당신과 다시 가까워지고 싶다’는 표현일 수 있지만, 상대에게는 ‘나를 몰아붙이고 비난하는 행동’으로 경험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의 행동에 자신만의 의미를 붙이기 시작하면 두 사람은 실제 상대의 마음보다 내가 해석한 상대의 마음과 싸우게 됩니다.
■ “왜 그랬어?”에서 “어떤 마음이었어?”로
관계의 변화는 거창한 대화법에서 시작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했어?”라고 묻기 전에
“그때 당신은 어떤 마음이었어?”라고 물어보는 것.“당신은 항상 그래.”라고 결론짓기 전에
“나는 이렇게 느꼈는데, 당신은 어떻게 느꼈어?”라고 확인해 보는 것.
그리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나 자신의 마음도 헤아리는 것입니다.
‘나는 왜 이 말에 이렇게 화가 났을까?’
‘화가 난 마음 아래에는 어떤 감정이 있을까?’
‘나는 이 사람에게 정말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상대의 마음만 들여다보다 보면 나를 잃을 수 있고, 내 마음만 바라보다 보면 상대를 잃을 수 있습니다. 건강한 관계에는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합니다.
■ 서로의 마음을 궁금해하는 관계
오랜 시간 함께했다고 해서 상대의 마음을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은 경험에 따라 달라지고, 관계 속에서도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그래서 가까운 관계일수록 오히려 ‘나는 당신을 잘 알고 있다’는 확신보다 ‘지금 당신의 마음은 어떨까?’라는 궁금함이 필요합니다.
부부상담에서도 누가 상대를 더 정확하게 이해했는지를 판단하기보다 두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서로의 마음을 다시 궁금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내 마음을 헤아리고, 상대의 마음도 헤아리는 것."
그 작은 차이가 익숙하게 반복되던 갈등에서 벗어나 서로를 다시 만나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단정하지 않고 궁금해하는 것, 그리고 관계 속에서 나의 마음도 놓치지 않는 것."
비:마인드는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관계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나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함께하고자 합니다.
나로서 존재하는 곳, 비:마인드 심리상담센터